본문 바로가기

자작시들

(279)
산길에서 시들어간 꽃에게 [산길에서 시들어간 꽃에게] 나를 네 삶의 일부가 되게 해준 것이 고마워서 너를 내 삶의 무대로 빌려준 것이 고마워서 돌아서는 모습조차 아름답게 멀어지는 모습조차 또렸하게 보듬고 보듬어서 간절히 모은 두 손에 놓고 따뜻히 입맞춤해 봅니다.
판단 중지 [판단 중지] 철학책의 한귀퉁이에 있는 단어 세상을 조금 안다고 생각할 때 터져버린 무지의 경계에 압도되어 개성없는 깨달음의 포장지가 되는 자조(自潮)의 단어 그것 밖에는 달리 저항할 것이 없는 피조(彼造)의 슬픔이 베인 단어 자유 의지의 봉인 속에 자유가 있다는 역설이다. 판단..
외로움은 일광욕이다 [외로움은 일광욕이다] 혼자 어둠 속에 앉는다는 것은 외로움을 부르는 주문 외롭다는 건 태양이 비치는 벤치에 튼실한 궁둥짝을 내어주고도 마음에 비를 내리는 거다 그러나 어둠 속에 앉아 정말 혼자가 된다는 것은 희망의 알을 품고 햇빛을 쬐는 넉넉한 일광욕이다.
천수 관세음보살 [천수 관세음보살] 자비를 깨달은 저 얼굴에 왕관을 씌우는 것도 모자라 천개의 구복에 매달린 인간의 욕심 저 가는 실눈이 무섭지 않은가 마음의 눈을 떠야할텐데 저 촘촘한 눈을 손에 붙이고서 어찌 자비의 손을 내밀라고 금빛 가식의 껍질에 갇혀 신음하는 부처가 보이지 않는가 사랑..
7월의 하늘 [7월의 하늘] 전깃줄 위로 구름이 신나게 미끄러지는 비 개인 오후 살면서 한 번 도 보지 못한 저 구름이 낯설지 않는 것은 같은 하늘 아래 살기 때문 구름을 미는 것은 바람일텐데 삶을 끄는 것은 구름인가 여름 한낮 부신 눈을 감아도 신나게 미끄러지는 과거의 잔상들 7월에 다시 꿈을 ..
비 내리는 가을 아침 예배당 <비내리는 가을 아침 예배당> 게으른 시인이 구름 제단 위로 시선을 공양하니 목탁소리 죽비마냥 시장같은 동네 어귀를 타악 탁 두드리고 구름이 하늘을 덮은 죄를 회개한 듯 마알간 빗방울이 돋는 예배당 유리창 이런 저런 핑게 좋아 들러도 그만 안들러도 그만인 절간 아래 예배당 ..
눈물이 쉬운가 [눈물이 쉬운가] 떠나 가는 것이 쉬운가 떠나 보내는 것이 쉬운가 떠나고 남음은 같은 시간을 가졌다는 증거 떠나고 남음은 다른 삶을 가졌다는 슬픔 나의 유통기한을 보고 있을 신에게 쉬운 것을 묻지만 떠남에도 눈물을 남음에도 눈물을 주신다. 눈물이 쉬운가 쉬운 것이 눈물인가
결혼식장에 선 둘에게 [결혼식장에 선 둘에게] 지금 이 자리는 둘이 함께 축복 받는 자리가 아니라 홀로 선 하나가 함께 선 하나에게 진정으로 축복할 수 있는 지를 확인하는 지성소 태어나면서 이미 서로를 향했던 나침반을 이제는 서로를 위해 새끼 손가락에 올려 놓는 시간이다 못난 사람들은 가슴이 만든 ..